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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룸비니)

몬~ 2015. 1. 30. 08:43

집 떠난지 열흘째.

언제 다 끝내고 집에 가나 싶었는데 여정의 반을 훌쩍 넘기다니 참 내가 대견스럽고 용합니다.

암, 대견스럽고 말고...ㅎㅎ^^;;

 

룸비니는 원래 인도땅이었는데 근대 인도가 독립을 하면서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으로

나뉘다 보니 국경에서 머지 않은 곳이지만 비자를 밟는 등 번거운 과정을 통하는 의례를 거쳐야

오가는 곳이 됐습니다.

 

 

 

룸비니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존지역으로 지역내에 각 국의 사찰이 들어 서 있어 한국사찰인

대성석가사에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안개 짙은 새벽 싯다르타 태자가 29년 동안 성장했던 나라 카필라바스투의 태자궁 터로 향했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가 기거했었을 방 터가 근방이라는데 정확히 알 수는 없고 벽돌담에 걸터 훵한

궁터를 바라보니 모든 게 헛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문의 개구멍을 통해 궁터를 벗어나 태자가 수행자를 만난 것을 기념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탑터를

돌아 다시 궁터에 오니 안개가 가시고 주위 사물이 보이는데 여기에도 힌두사원이 있습니다.

하긴 인도에서 불교는 힌두교의 한 자락로 여긴다고 하니 할 말은 없지만 불량감자가 보기에도 씁쓸한

마음을 금 할 길이 없습니다.

 

 

이른 아침 대중들의 행렬이 마을 사람들을 깨웠나 봅니다.

지나 가는 우리도 바라 보는 그들도 흥미로운 풍경입니다.

 

 

 

탁발중인 스님도 만나고...

 

 

 

왕궁터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힌두사원

 

 

다음 행선지는 쿠단입니다.

아들이 부처가 되어 온다는 소식에 정반왕은 기쁜 마음으로 카필라 성을 나와 천막과 음식을 마련하고

기다렸던 곳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대중과 함께 탁발을 행 함으로써 정반왕을 실망시켰는데 정반왕에게는

오로지 부처님이 아닌 아들로만 보여졌던데서 안타까움과 애틋한 부정을 느끼게 합니다.

물론 좋은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부모 마음이 그렇듯이 멀리서 들려오는 부처님의

소식에 오로지 아들이 수행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지, 잘 먹고 잘 입고 있는지에만 관심을 표했던 정반왕이기 때문입니다.

 

왼쪽 탑위에는 힌두교에서 링가를 설치해 놓았고 오른쪽 탑기단 부분에는 부처님과 정반왕의 그림이 허술하게 모셔져 있습니다.

 

소도 자유롭지만 개 또한 자유로운 곳...

 

기도를 하는 스님과 바라다 보는 개의 모습이 엄숙한 분위기를 깹니다^^;;

 

 

 

 

다음 일정은 랑그람입니다.

8등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 온 콜리족이 세운 탑이 있는 곳인데 천하의 아쇼카왕도 여기는 손을 대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헐리지 않은 유일한 사리탑이라는데 그러다 보니 정식으로 인정은 못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룸비니 동산을 찾았습니다.

마야부인이 출산을 위해 고향인 데바다하로 돌아가던 중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잠시 쉬다가 산기를 느끼고

아쇼카나무를 잡고 오른쪽 옆구리로 부처님을 낳은 곳이라고 합니다.

브라만은 머리에서, 크샤트리아는 어깨로 바이샤는 배로 수드라계급은 발에서 난다는 말에서 기인된

설화인 것 같습니다.

 

입구에 아기부처님 동상이 있는데 힌두교 영향을 받아 배가 볼록하게 나와있는 게 재미있습니다.

건물안에는 마야부인의 출산 형상과 당시의 건물터가 남아 있지만 실내 촬영은 엄중히 금하는지라

부득히 몰래 담았지만 양심상(?) 공개는 못합니다. ㅎㅎ^^;;

 

 

 

 

 룸비니에서 만난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