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말 신대륙 무역거점기지로 전성기를 맞아 스페인 최대의 성당과 대학이 설립되었던 곳입니다. 대형선박 출입이 가능한 육지내항으로 그 흔적이 황금탑에 남아 있습니다. 황금탑은 이곳 과달키비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들의 검문과 세금을 받기 위해 강 건너의 은의 탑에 쇠고리를 걸었던 곳으로 지금은 은의 탑은 없어졌습니다. 당초에 황금으로 입힌 타일을 붙혔다는 설과 신대륙에서 가져 온 황금을 보관했기 때문에 황금탑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세비야는 론다와 함께 현대적 의미의 투우가 시작된 곳입니다. 이곳 투우장은 스페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중의 하나입니다.
세비야대성당은 유럽 3대 성당중 하나일 정도로 규모가 대단히 큽니다. 15세기에 이슬람을 정복한 기독교인들이 모스크 위에다 성당을 지었는데 내부 곳곳에 그 흔적들이 남아있습니다. 특히 유명한 히랄다탑은 무슬림들이 기도 시간을 알리는 미나레트에 28개의 종을 달고 고딕식 지붕을 얹었습니다.
세비야 성당에서 콜럼부스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의 묘와 그의 첫째 아들의 묘지판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포르투갈인인 콜럼부스가 처음 신대륙 항해를 떠났던 곳이 세비야였기에 콜럼부스는 그렇더라도 이곳 성당에 이례적으로 수도사인 큰아들이 들어오게 된 이유는 자칫 신대륙 발견의 공을 다른사람에게 빼앗길 뻔 한 것을 큰아들이 아버지의 항해일지를 토대로 콜럼부스 전기를 써냄으로 그 공적을 인정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콜럼부스의 성공을 시기했던 재상의 음모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연금생활을 하던 중 신대륙 발견공로마저 함께 항해했던 핀존선장에게 빼앗기게 되었던거죠. 현대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는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은 하나의 재앙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발견이 조금이라도 늦춰졌더라면 원주민들과 그들의 문명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보존되지 않았을까 하는 측면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콜럼버스의 관에는 그의 유해가 들어 있는데 유언에 자신이 발견한 신대륙에 묻어 달라고 부탁을 해 땅에 묻질 않고 언젠가 신대륙에 묻기 위해 레온, 카스티야, 나바라, 아라곤의 왕들로 하여금 들고 있게 하고 있습니다.
이곳 성당의 제단 정면에 있는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 1.5톤으로 만든 성모마리아 품에 안긴 예수상은 보수공사 관계로 천막이 드리워져 보질 못했습니다.
무리요의 산 안토니오의 환상이라는 작품으로 그림 속의 안토니오는 사랑을 이루어지게 한다는 성인입니다. 누군가 이 그림의 반쪽인 성인이 나오는 그림을 훔쳐갔고 50여 년이 넘게 못 찾다가 뉴욕의 뒷골목 화랑가에서 발견되어 되찾아 온 사연 많은 그림입니다. 참고로 스페인 대표 화가로 무리요, 벨라스케스, 마야를 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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