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을 15세기 해양강국으로 이끈 이들을 기린 발견의 기념비입니다. 엔리케왕자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여 1960년 바스코 다 가마가 항해를 떠난 자리에다 세웠다고 합니다. 맨 앞에 선이는 병약하여 본인은 직접 원정길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일찍이 해양센터를 세워 항해기술을 개발하고 사각형의 돛을 삼각형으로 바꿔 원거리 항해를 가능케 해 희망봉을 돌아 인도와 일본과 교역을 하고 브라질을 병합하는 등 포르투갈의 황금기를 이끈 엔리케왕자. 나라의 부를 일으킨 위대한 인물로 우리나라 세종대왕 정도의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광 뒤에는 어둠도 있어 로마시대 이후 폐지된 노예제도를 부활하여 노예를 전 유럽에서 매매를 해 많은 이득을 보기도 한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바스코 다 가마는 그동안 육상으로만 이뤄졌던 인도교역을, 항로를 처음으로 개척하여 인도무역을 독점하고 유럽의 일상생활과 경제생활을 변화 시킨 인물입니다. 하지만 인도는 장구한 세월을 서구의 통치를 받는 불운의 시작이 되기도 합니다. 1998년은 바스코다가마가 인도의 캘리컥 해안에 발을 디딘지 500주년이 되는 해였는데 출발지에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벌렸으나 도착지에서는 바스코가다마의 꼭두각시를 태우고 검은깃발을 세워 격렬한 항의행진을 했다고 합니다.
벨렘탑은 테주강에 있는 4층 구조의 건물로 처음에는 인도, 브라질로 가는 선박의 통관을 맡고 안전항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였던 곳으로 모양이 귀부인의 드레스를 늘어뜨린 것과 같아 테주강의 귀부인이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지금은 강의 흐름이 바뀌어 수심이 낮아졌지만 초기에는 탑 1층까지 물이 차서 정치범들을 가둔 감옥으로 쓰였다고 하네요. 나중에 스페인과 나폴레온 침략때는 이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수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502년에 건립된 포르투갈 건축예술의 최고봉인 제로니모스 수도원이라 불리는 하이에로니미테스 수도원은 대지진 때 경미한 피해만 입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 되고 있습니다. 이곳에 바스코 다 가마의 묘가 안장 되었습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 옆 5번 우드 거리에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빵집인데 이거 맛 볼려고 줄을 서고 아무리 빵의 본고장이고, 에그타르트만 1837년부터 만들어 온 맛집이라지만 내 입에는 별로였던 거 같습니다.^^;;
까보 다 로까의 까보는 CAPE 즉 곶이란 뜻이고 로까는 미친 사람이란 말이랍니다. 중세시대 지동설이 대세일 떄 이곳은 지구의 끝이었습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은 올 데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사실 ROCA는 스페인어로 돌이라는 뜻입니다. 포르투갈어는 확인할 수가 없네요.ㅜㅜ)
보라, 유럽 끝에 포르투갈이 있다. 여기서 대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우리의 항해는 필연, 우리의 삶은 인생의 우연일 뿐이다. 어느 시인이 읆은 싯귀인데 한 귀절이 탑에 새겨져 있습니다.
신트라는 일찍이 바이런이 위대한 에덴이라 표현했으며 그 외 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찬양해 마지 않았던 곳입니다. 20세기 초까지 왕실의 여름별장으로 쓰여졌던 곳으로 산 정상에는 무어인들이 세운 성곽이 보이기도 하지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어 기념품상점만 기웃거리다 포르투갈의 유명한 포트와인만 사가지고 왔습니다. 포트와인은 해양시대 먼 항해를 떠날 때 싣던 술로 일반 포도주는 금방 시어버리지만 포트와인은 브랜디를 첨가에 적당한 도수를 유지하였고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장미전쟁때 포도주 수입을 못 했던 영국에 수출하면서 양조기술이 더욱 나아져 오늘날 세계적인 와인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